조선 팔도 중 전라도를 지형적으로 특징 짓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지만, 굴곡이 심한 해안과 너른 갯벌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때 비하(卑下)의 표현이라 하여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개땅쇠’라는 말도 워낙은 갯벌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주장이다. 그만큼 한반도의 남서 해안에는 유난히 갯벌이 많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의 중간 형태 지형이라서 간척 사업을 하기가 쉬운 지역이다. 이번에 전북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새만금 방조제 33㎞가 공사를 시작한 지 15년 만에 마무리 되었다. 세계 최장의 방조제라고 한다. 새만금은 수백 년 동안 진행되어 온 서해안 간척사(干拓史)에서 보면 그 정점에 서 있지 않나 싶다.
서해안 간척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조선 중기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다. 해남 윤씨(海南尹氏)인 고산 집안은 전라도에서 16세기부터 지금까지 500년 동안 계속 이어져온 부잣집이자, 기호남인(畿湖南人)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교목세가(喬木世家)이다.
고산이 1600년대 중반에 대규모로 조성해 놓은 간척지는 두 군데다. 전남 진도군 임해면 굴포리의 100만여평과, 완도군 노화읍 석중리의 100만여평이 그곳이다. 덤프트럭도 없고 포클레인도 없었던 조선시대의 간척 사업은 보통 사람이 시도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진도의 굴포리 방조제 공사는 난공사였던 모양이다. 물살이 워낙 세서 지게로 흙을 가져다 부으면 바닷물이 쓸고 내려가 버리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심지어는 제주도에서 배로 시커먼 현무암을 실어다가 기초공사를 하기도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날 고산이 꿈을 꾸었는데 수염이 허연 노인이 나타나 “아침에 안개가 자욱할 것이다. 그 안개를 따라서 둑을 쌓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날 아침에 과연 안개가 끼었고, 그 안개를 따라서 둑을 쌓았더니 무너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굴포리 주민들이 고산에 대한 제사를 지내준다. 농사지을 땅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는 표시다. 고산의 12대 후손인 윤정현(尹定鉉)도 1930년대 초반에 해남군 북일면 금당리에 15만평의 간척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