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한조각_신상목 29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3] 루스벨트의 비전

930년대에 들어서자 1차 대전 이후 일시 평화를 되찾았던 국제 정세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으로 대표되는 파시즘 세력의 발흥은 ‘베르사유·워싱턴 체제’에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에도 미국의 여론은 여전히 전통적인 ‘고립주의’에 편향되어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정세는 남의 일로 치부되었고, 미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개입주의’는 설 자리가 좁았다. 중일전쟁 발발 3개월 후인 1937년 10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시카고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러한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격리 연설(Quarantine Speech)’로 알려진 이 연설에서 그는 일부 호전적 국가들이 야기하는 무법 상황을 ‘전염병(epidemic)’이라 부르며 국제적 격리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2] 국가가 타락하면, 法이 많아진다

로마의 3대 역사가로 꼽히는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는 공화국 기풍이 쇠퇴하고 제왕적 권력의 폐단이 심해지는 풍조에 대해 엄정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악티움 해전’은 영웅 옥타비아누스가 반역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로마 패권 시대를 연 전투로 칭송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개인적 불화로 시작된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 친척과 측근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제정(帝政)의 막을 연 전투’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선을 긋는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으로 남기는 세태를 거부하고, 영웅 서사에 의한 화려한 치장이나 분식(粉飾)을 걷어낸 채 냉정하고 건조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것이 타키투스식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몇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1] 대만을 지킨 사막의 방울뱀

1958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8·23 포격으로 ‘제2차 대만해협 위기’가 시작된다. 첫날에만 양측 간에 7만 발에 가까운 포탄이 교차했다. 집중포화를 맞은 진먼(金門)섬은 지표가 2미터나 깎여나갔다고 할 정도로 대규모 화력이 동원된 무력 충돌이었다. 당시 중국의 초기 기세를 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국의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이다. 중국이 소련에서 도입한 미그-17은 대만 공군의 F-86 세이버보다 작전 고도나 속도 면에서 우월한 성능을 자랑하는 신기종이었다. 중국의 작전계획은 제공권 장악을 통해 진먼, 마쭈(馬祖)의 후방 보급로를 차단한 후 상륙전에 돌입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중국의 공세가 임박했음을 감지한 미국은 대만 공군에 사이드와인더를 원조하는 ‘블랙 매직’ 프로젝트를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0] 비운의 국명 ‘중화민국’

현대 한국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중국(中國)’이라는 명칭은 20세기 초반까지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었다. 신해혁명 후 중화민국이 성립하자 일본은 1913년 각의 결정을 통해 (조약문과 국서를 제외하고) ‘지나국(支那國)’을 통칭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支那(일어 발음 ‘시나’)는 한(漢)·당(唐)·명(明)·청(淸) 등 왕조·정권을 뛰어넘어 통사적인 의미의 중국을 칭하는 용어로 에도시대부터 사용되던 지리적 명칭이었다. 당초 중국인들에게 특별한 위화감이 있는 명칭이 아니었으나, 중국이라는 이름이 자리를 잡고 ‘국권회복운동’이 거세지면서 국명 문제가 불거진다. 국민당 정부는 지나 명칭에 멸시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불쾌감을 표하는 한편, 모든 문서에서 ‘중화민국’을 사용해 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9] 조선 망국의 교훈

한국인들이 을미사변·아관파천·대한제국 선포의 시기로 기억하는 1895~1897년은 영국과 러시아가 ‘파미르 국경 위원회’를 구성하여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획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그를 저지하려는 영국 간의 ‘그레이트 게임’이 발칸반도, 중앙아 전역(戰域)을 거쳐 극동에서 최후의 결전을 남겨두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에 세력 공백이 발생하자 세력 균형 외교의 달인 영국은 러·일 어느 쪽도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균형자 역할을 자임하였다. 조선의 독립 유지에 영국만큼 유효한 우군이 될 수 있는 열강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국의 역할을 발로 차버린 것은 고종 자신이었다. 1897년 이후 유럽에서의 입지 약화를 극동 진출로 만회하려는 러시아와 권력 유지를 의..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8] 불체포 특권

헌법상 ‘불체포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 회기 중에 체포되려면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체포동의안을 ‘체포허락 청구’라고 한다. 1998년 2월 19일 자민당 소속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 의원에 대한 체포허락 청구가 중의원 본회의에 회부될 예정이었으나 급거 철회되는 소동이 벌어진다. 철회 사유는 당사자인 아라이 의원의 자살이었다. 아라이 의원은 박경재라는 이름을 가진 재일조선적 귀화 정치인이었다. 동경대를 나와 대장성 관료로 엘리트 가도를 달리던 그는 정계로 진출하여 42살에 첫 당선을 거머쥔 후 내리 4선에 성공한 유력 정치인이었다. 버블 붕괴로 침체에 빠진 일본의 회생을 위해서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을 일신해야 하며,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거물 정치인이라도 가차 없이 정계에서..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7] 도쿄지검 특수부

1947년 7월 일본 중의원에 ‘은퇴장물자 등에 관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된다. 은퇴장물자(隱退臟物資)란 전쟁 종료 후 자취를 감춘 전시 물자를 말한다. 일본 정부는 전시 경제를 가동하며 민간 징발 등을 통해 막대한 군수 물자를 곳곳에 비축해 두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국민의 피눈물이 담긴 전시 물자의 행방이 묘연하고 일부는 암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의혹이 잇따르자 물자 부족과 인플레에 신음하던 시중의 불만이 폭발했고, 이에 의회 차원에서 진상을 파악하겠다며 위원회를 꾸린 것이다. 전시물자의 상당수는 구(舊)군인, 관료들에 의해 빼돌려져 사설 금융업자나 브로커를 통해 암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 뿌려진 정황도 있었다. 미 군정청 관계자가 ‘사상 최악의 국가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6] 일본과 튀르키예의 ‘형제애’

한국과 튀르키예는 종종 서로를 피를 나눈 형제국이라고 부른다. 튀르키예의 6·25 파병에서 비롯된 고마움과 친근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튀 유대를 상징하는 사안이 한국전 참전이라면, 일본에서는 ‘에르투를(Ertuğrul)호 조난 사고’가 양국 관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에르투를은 일본과 친선 증진을 위한 외교사절단 방일 임무에 투입된 (튀르키예의 전신) 오스만 제국의 군함 이름이다. 1890년 6월 요코하마에 도착해 압둘하미드 2세 황제의 메이지 천황 앞 친서를 수교(手交)하고 무사히 임무를 마친 후 9월 귀국길에 오른 에르투를호는 출항 하루 만에 와카야마현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침몰하고 만다. 승선자 656명 중 587명이 사망한 대형 해난 사고였다. 거의 1년에 걸친 항해로 선박 노후화..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5] 돌고 도는 돈의 역사

미국 돈인 달러화(貨)와 한국 돈인 원화가 원래는 같은 단위였다고 하면 놀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미국이 달러화를 자국 화폐 단위로 사용하게 된 것은 ‘스페인 달러’의 영향이다. 스페인 달러란 스페인의 중남미 식민지에서 주조한 8레알(real)짜리 은화를 말한다. 독자 화폐가 없었던 미국에서는 독립전쟁 와중에 스페인 달러가 내국 통화처럼 대량 유통되었고, 이 영향으로 독립 후에 달러가 공식 화폐 단위로 채택되었다. 막대한 발행량을 자랑하는 스페인 달러는 17세기 이후 세계 각지에서 통용되었는데, 특히 아시아 무역에서는 ‘trade dollar’(무역은·貿易銀)로 불리며 기축통화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 3국의 화폐 단위가 ‘圓(원·엔·위안)’이 된 배경에는 ‘홍콩 빅토리아..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4] 100억을 횡령한 노조 직원

2020년 1월 일본 경시청은 스미토모중기계 노동조합연합회의 회계 담당 직원이었던 60세 여성 다무라 준코(田村純子)를 긴급 체포한다. 체포 후 2주 만에 도쿄지검이 전격 기소를 결정한 그녀의 혐의는 10년에 걸쳐 조합비 10억엔을 횡령하였다는 것. 횡령 규모도 역대급이지만, 다무라의 죄질이 특별히 나빴던 것은 그녀가 손을 댄 돈이 7000여 명의 조합원이 의무적으로 가입한 연금 적립금이었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노후 자금이 연기처럼 사라진 조합원들은 망연자실했고, 일본 사회는 거액의 노조 횡령 스캔들에 술렁거렸다. 거액을 가로챈 다무라는 그 돈으로 수억원을 호가하는 말 6마리와 고급 SUV를 구입하는 등 귀족 같은 생활을 즐겼다. 2년마다 갱신되는 집행부는 그녀의 범죄 행각을 10년 동안 눈치 채지 못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