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_유대인이야기 88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56]70년 석유 수입국서 산유국 된 이스라엘_“영원한 동산의 보물…” 성경대로 파봤더니 석유·가스 나왔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70년 동안 석유 수입에 고생이 많았다. 인근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석유를 안 팔아 멀리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남미 콜롬비아에서, 북유럽 노르웨이 등에서 석유를 구해 오느라 석유 가격과 전기료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스라엘에서 한 지구물리학자가 유전을 발견했다. 2004년 6월 13일 자 BBC뉴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기보트 올람’이라는 이스라엘 회사가 성서에서 영감을 받아 이스라엘 한복판에서 유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영원한 작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기보트 올람’의 창업자인 극정통파 유대인 토비아 러스킨은 성서와 과학 지식을 토대로 유전 탐사에 성공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출생해 지구물리학을 공부하고 여러 메이저 석유사에서 근무하다 1984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러스킨이 ..

[홍익희의 흥미진진 경제사] [17] 근대 최초의 증권거래소 탄생하다

네덜란드의 이순신 ‘야콥 제독’ 휴전 협정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다 야콥 제독. /위키피디아 1607년 무렵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상대로 거의 40년 동안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양국은 지쳐갔다. 1588년 칼레 해전과 1602년 도버해협에서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군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전쟁은 교착 상태에 접어들었다. 오랜 전쟁으로 스페인은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였다. 양국의 휴전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런 상황에서였다. 네덜란드는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승리가 필요했다. 네덜란드 지도자들은 이 임무를 ‘야콥 반 힘스커스’ 제독에게 맡겼다. 야콥(야곱) 제독은 원래는 유능한 선장이자 탐험가이자 상인이었다. 야곱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유대인으로 추정된다. 야콥이 바렌츠와..

[홍익희의 흥미진진 경제사] [16] 근대 최초의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2)이익의 재투자로 해외 무역관 설립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회사 설립을 위해 준비했던 자금을 그대로 투입해 꾸민 선단을 아시아로 보내는 데 썼다. 이 선단은 성공리에 귀환하여 265%의 이익을 냈다. 첫 번째 항해는 이전과 같은 ‘모험 사업’ 방식을 택했다. 투자자들은 1회 출항을 위해 자금을 투자했고, 배가 귀환하자 정산 과정을 거쳐서 모임을 해산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위키피디아 그런데 다음 항해부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조직했다. 일회성 항해가 아닌 여러 항해의 장기적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배당금 개념의 주식을 도입했다. 투자자들이 투자한 금액을 1항차 이후 곧바로 찾지 못하고 10년 후 정산하기로 했다. 따라서 자본이 보존되므로 회사가 해체되지 않고 항구적으로 존립하게 된 것이다. 10년 단위로 1612년과 1622년에 ..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55]라스베이거스를 만든 벅시·커코리언·애덜슨_사막 은광촌을 카지노·컨벤션 도시로… 3명의 유대인 ‘잭팟’

라스베이거스의 중심가인 스트립(Strip)의 야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대로 변을 따라서 호텔·카지노·공연장·전시장·회의장·놀이시설 등을 아우른 복합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건물들은 고대 이집트부터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 다양한 테마로 설계·건축됐으며 연중 세계적 수준의 공연과 전시회가 열린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라스베이거스를 잠들지 않는 도시로 만든 주역은 벅시 시겔, 커크 커코리언, 셸던 애덜슨 등 유대인들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관광국 우리는 일자리가 감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로봇 등 산업 자동화와 비약적으로 발전 중인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빼앗아 갈 전망이다. 이에 대처할 고용 창출 계수가 높은 서비스산업 특히 관광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팬데믹..

[홍익희의 흥미진진 경제사] [15] 근대 최초의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요한 반 올덴바르네벨트. /위키피디아 원양 회사들이 수년 사이에 14개로 늘어나 지나친 경쟁이 문제가 되었다. 선단 이익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영국 등 열강과 경쟁하려면 규모가 크고 강한 회사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상공업이 가장 발달한 홀란트주와 제일란트주 총독인 오라녀공 마우리츠와 네덜란드 연합 전국 회의 의장 요한 반 올덴바르네벌트가 나서서 상인들과 협상하며 회사 통합을 유도했다. 한 회사로 합치면 후추 무역 독점권을 주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의회 역시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자”며 상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당시 공화정을 표방한 네덜란드에서는 전국 회의가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전국 회의와 주 정부의 주요 결정권자들이 대부분 상인 가문 사람이었다. ..

[홍익희의 흥미진진 경제사] [14] 인도 항로에 진출한 네덜란드 상인들앤트워프 봉쇄로 암스테르담이 떠오르다

스페인과 독립 전쟁 와중에 발생한 1576년 앤트워프 학살사건으로 많은 유대인이 암스테르담으로 옮겨왔다. 이후 1581년에 네덜란드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584년 스페인이 앤트워프를 공격하면서 스페인 해군은 앤트워프 앞의 스헬트강과 플랑드르 해안을 봉쇄했다. 특히 32척의 선단을 사슬로 연결해 아예 스헬트강을 막아버렸다. 이제 앤트워프 항구와 대서양의 통로는 완전히 막혀버렸다. 항구 도시의 상업적 패권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단자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 알렉산더 파르네제 총독. /위키피디아 앤트워프 시민들은 절망감에 빠졌다. 치열한 공격에도 포위망은 뚫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구원군 대신 인근 도시 브뤼셀, 브뤼헤, 메켈렌의 함락 소식이었다. 1년 이상 저항했던 앤트워프는 결국 1585년 8월 15일..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54] 인공지능 세상을 바꾸는 AI혁명… 그 뒤에는 유대인 천재 4명 있다

유대인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은 오늘날의 컴퓨터가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곧 멍텅구리 계산기에 인간의 뇌를 모방한 CPU를 부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 컴퓨터가 1950년의 ‘에드박’이다. 그래서 현대의 컴퓨터를 ‘노이만식 컴퓨터’라 부른다. 폰 노이만은 1932년에 아인슈타인과 함께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 최초의 종신 교수가 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다. 그는 전공인 수학을 경제학과 물리학, 생물학에 접목해 새로운 이론들을 창시했다. ‘게임이론’을 창안한 경제학자이자 양자역학 발전에 공헌한 물리학자이며, 인공 생명을 연구한 생물학자였다. 폰 노이만은 1949년 ‘첨단 고등 장치의 이론과 구조’라는 논문에서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익희의 흥미진진 경제사] [13] 유대인들, 종교의 자유 찾아 암스테르담에 몰려들다간척지 인센티브가 암스테르담을 탄생시키다

험난한 자연환경을 극복한 저지대 간척의 역사가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저지대는 빙하기를 거치면서 해수면과 지반의 침강과 융기를 통해 현재의 지형을 형성했다. 저지대는 해수면보다도 낮은 곳에 위치해 있고 그 흔한 언덕조차 보기 힘든 평평한 늪지대와 갯벌이 대부분이었다. ◇간척지 인센티브가 암스테르담을 탄생시키다 네덜란드 텍설(Texel)섬에서 덴마크 남부 해안까지 이어지는 바던해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에서도 가장 큰 갯벌이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 간만 차가 3m가 넘고, 길이는 약 500㎞, 넓이는 약 1만㎢에 달한다. 라인강, 마스강, 스헬더강 등 북부 유럽의 3대 강이 만드는 삼각주를 중심으로 저지대가 펼쳐져 있다. 바덴해 갯벌. /위키피디아 그러다 보니 저지대 해안가가 모두 강 하구에 ..

[홍익희의 흥미진진 경제사] [12] 목숨보다 신용...17세기 네덜란드가 번영한 이유유대인의 고객 중심주의, 해운업에서도 빛을 발하다

네덜란드는 라인강과 마스강, 발강 하류에 걸쳐 있어 중세부터 내륙 수로를 이용한 물류가 발달했다. 플류트선은 배 밑바닥이 평편한 평저선이라 얕은 수심의 바다나 강에서도 운용할 수 있어 수로를 이용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 화물을 배달했다. 플류트선이 더 이상 못 올라가는 수심이 얕은 강에서는 선상에서 작은 배를 내려 가능한 한 고객 가까이에 화물을 배달해주었다. 이러한 서비스에 고객들은 감동했다. 플류트선. /위키피디아 중세 이래로 라인강 유역 나루터와 상업 도시에서는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상권을 주도하고 있었다. 중세 십자군 전쟁 때 가장 많은 학살을 당한 사람들이 라인강 변의 유대인들이었다. 이때 동구와 러시아로 피란 간 유대인 후예들이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뜻의 ‘아슈퀴나지’이다. 16세기 암스테르담 유대..

[홍익희의 흥미진진 경제사] [11] ‘바다의 마부’라 불린 이 배, 네덜란드 운명 바꿨다플류트선, 속도 빠르고 화물 많이 실을수 있어배불뚝이 저중심설계로 악천후도 잘견뎌

1538년의 암스테르담 항구 모습. /위키피디아 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은 원래 ‘암스텔강의 둑’이란 뜻이다. 13세기에 어민들이 암스텔강에 둑을 설치하고 정착한 데서 유래했다. 그 뒤 14세기에는 한자동맹에 가입하여 함부르크의 맥주 수출항으로 번창했다. 16세기 중엽부터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든 곳은 앤트워프나 브뤼헤보다 스페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었다. 이는 종교적 관용을 베푼 네덜란드의 유대인 수용정책 덕분이었다. 네덜란드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들하고 결혼하거나 국교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유대인들을 받아들였다. 이는 오히려 유대인들이 원하는 바였다. ◇ 간척사업에 풍차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다 ‘수면보다 낮은 땅’이라는 뜻의 네덜란드는 전 국토의 25%가 바다보다 낮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