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에서

중국의 새 구호 "펑페이다오디"

오늘도해피데이 2025. 4. 29. 09:53

제나라의 인질이었던 초나라 태자는 ‘땅 상납’을 약속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초양왕에 오른다. 즉위 직후 그는 사신단을 보내 제나라를 방심하게 하면서 뒤로는 이웃국과 손잡으며 반격을 준비한다. 한참 지나 찾아온 제나라 사신에게 초양왕의 충신 소상이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부터 환갑 노인까지 동원해 30만 군대를 꾸렸소. 펑페이다오디(奉陪到底·기꺼이 끝까지 상대해 드리지).“

 

중국이 2차 미·중 관세 전쟁을 맞이하며 내놓은 새 구호가 바로 ‘펑페이다오디’다. 지난 10일 중국 외교부·상무부가 처음 언급했다. 미국과 장기전을 치를 각오가 담겨있다.

중국 지도부는 트럼프의 재선 성공 당일부터 미·중 정면 대결을 예상했다. 최소 4년, ‘트럼프 3선 시나리오’를 고려하면 8년까지 내다봤을 테다. 2018년 막 올랐던 1차 미·중 무역 전쟁은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 변화의 신호탄이고, 트럼프가 떠나 있던 시절 중국은 더욱 큰 ‘위협’으로 부상했으니 말이다. 중국이 트럼프의 ‘145% 추가 관세율’에도 크게 놀라지 않는 이유다.

다가올 공격을 예상한 중국은 분주하게 미국을 지웠다. 대미 수출 비율을 2018년 19%에서 지난해 15%로 낮췄고, 작년엔 돈을 풀어 시한폭탄인 지방정부 부채 문제를 잠재웠다. 미국 의존도가 절반에 가깝던 대두(콩)는 이제 수입량 71%가 브라질산이다. 미국의 기술·자본 봉쇄에 맞서 기술 자립과 증시 통제에도 속도를 냈고, 코로나 봉쇄로 3년짜리 전 국민 통제 훈련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동남아 등을 돌며 우호국을 모집 중이다. 미국이 해운, 에너지 등 분야로 압박 전선을 확대하려고 하면, 중국도 미국 국채 매도, 희토류 수출 제한, 위안화 평가 절하 등 카드를 꺼낸다.

 

제나라로부터 땅을 지킨 초나라처럼 중국도 이번엔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2018년만 해도 확신이 부족해서 ‘장기전’이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당시 중국 지도부의 ’32자(字) 미국 대응 원칙’은 “환상을 버리고 투쟁을 준비하라. 안정(定力)을 유지하며 자신감을 키우라. 한계선을 사수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며, 문제에 천착해 부족함을 채우라”였다. ‘환상 버리고 투쟁 준비’는 마오쩌둥이 1949년 8월에 쓴 신화통신 기고문의 제목인데, 여기엔 “미국에 환상을 품은 이들이 장기전에 나설 결심을 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

다만 ‘동승서락(동양이 서방을 이긴다)’ 같은 낙관론은 중국 지식인들도 고개를 젓는다. 소비 부진과 부동산 시장 침체, 청년과 저소득층 실업 위기에 직면한 지금은 싸우기에 최적의 시기가 아닌 탓이다. 미·중 정면 대결이 손자병법에 나오는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지휘관과 부하가 한뜻이 되면 승리한다)’의 계기가 되는 걸 중국 지도부는 바랄 것이다. 지도자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전시 태세를 갖추면,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도 정권이 안정된다. 미국 공세를 명분 삼아 내수 기반 경제 전환, 첨단 기술 전면 자립, 대대적인 출해(出海·해외 수출), 글로벌사우스 결집을 실현하면 미국을 앞설 기틀을 닦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과연 미래는 중국 뜻대로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