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부부의 성(性)
안녹산의 난(亂)이 나자 두보(杜甫)는 가족을 피란시키고 장안에 남았다가 반군에 붙잡힌다.
‘…향긋한 밤안개에 그대 머리가 젖고/ 맑은 달빛 아래 구슬 같은 팔이 차리니/ 언제나 사람 없는 휘장에 기대/ 두 얼굴 마주보며 눈물 마르려나’(香霧雲?濕 淸輝玉臂寒 何時倚虛幌 雙照淚痕乾). 그 시절 두보가 아내를 그리며 읊은 ‘月夜’(달밤)다. 살을 섞는 부부관계에 대한 갈망이 매우 육감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담겼다.
▶‘그대, 우리가 나란히 누워 잠자리에 들면/ 검푸른 강물이 이렇게 흘러드는구려/ 젖어드는 강물에/ 설핏설핏 스치우는 당신을/ 꿈결인가 확인하려 손을 뻗으면… 그대, 어느새 이리 까칠해졌소/ 무엇을 새삼 말하려 하오/ 알 수 없는 말소리 아스라이 흐르고…’(한광구 ‘강물이 되어’). 한 몸 된 부부의 사랑은 강물처럼 굽이쳐 흘러든다. 부부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은 잠자리에서 가장 애틋하고 절절하다.
▶법과 현실에서 부부의 성(性)은 시(詩)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의무냐 선택이냐는 오랜 논란이 그렇다. 1994년 캘리포니아에서 아내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가톨릭 신자가 성경 말씀에 따랐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의무를 다하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고린도서). 증인으로 나선 신부(神父)가 반박했다. “남편은 예수가 교회를 사랑했듯 아내를 사랑하라”(에베소서). 사내는 1년형을 선고받았다.
▶서구 선진국도 1970년대까지는 부부 사이에 성적(性的)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혼인계약 조건에 ‘아내는 남편이 관계를 원할 때 언제든 응한다는 동의가 포함돼 있다’는 ‘Irrevocable and Implied Consent’(철회할 수 없는 암묵적 동의) 이론이다.
미국의 경우 이 논리는 1984년 법원이 별거 중인 아내를 폭력으로 범한 남편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깨졌다.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민법 826조 1항). 우리는 민법상 동거의무에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포함된다는 해석이 유력했다. 대법원 판례도 부부 사이 강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여당이 부부 강간죄를 도입하는 가정폭력특별법 개정안을 이달 안에 낸다고 한다. 야당도 찬성하고 있어서 도입 가능성이 높다.
도를 넘는 폭력과 강압은 막아야겠지만 전통적 가족 정서와 어긋나는 구석도 없지 않다. 찬반을 떠나 가장 내밀한 침실까지 법의 도마에 오르는 현실에서 가정의 황폐화와 위기를 본다.
'칼럼중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싸우면 둘 다 벌주는 일본… 최악 상황서 답 찾는 한국 (0) | 2019.02.18 |
---|---|
나이가 인생의 속도와... (0) | 2016.09.08 |
죽음 학회 (0) | 2016.09.08 |
미인의 조건 (0) | 2016.09.08 |
올여름 일본 (0) | 2016.08.31 |